천리안, 나우누리...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. . . 유가촌 (유머가 가득한 마을), 푸하, 모뎀 인터넷 시절. . .
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.
8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.
우리아빠는 이전에 농협에 다녔다.
그래서 한달에 한번, 월급날마다
농협에서 발간되는 '어린이 새농민' 이라는 잡지를
(이름 한번 컨츄리틱하다 -_-;;) 들고오곤 했는데
어린 나이에 돈은 뭔지 모르니
어린이 새농민을 읽는 재미로
아빠 월급날만을 기다렸다.
누구 집인들 안그렇겠냐마는...
어릴적 우리집은 상당히 -_-게 살아서
아빠 월급 대강 3~4일 전부터는
반찬은 김치, 우엉, 대강 이런 풀쪼가리였고
그나마도 엄마는 맨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 (흑...T_T)
하지만 그 사이 사이에도, 당시 매운것을 못먹던
어리고 귀여운 아들 중호 (-_-;;;;;;;;;;;;;) 를 위해
수시로 김치를 물에 씻-_-어 잘게 찢-_-어
밥위에 올려놓-_-아 주시던 마더 의 sarang 이여 *ToT*
-_-;
월급 다음날이면 항상 엄마는 시장에서 오래 있다 돌아왔고
그날 밤에는 아빠가 일찍 들어와서
온 가족이 불판 앞에 둘러앉아 고기를 지글지-_-글 구워댔다.
한달의 단 한번 먹는 고기. 훗 -_-;;
그때, 엄청나게 처먹어 대는 우리들 앞에서
엄마는 "그만 먹어라. 아빠 드실것도 남겨야지! -_-++" 라며
우릴 두들겨패-_-셨고
아빠는 자식들한테 고기 하나 배불리 먹여주지 못하는
가장의 긍휼함 때문이었는지
어색한 헛기침만 하셨다.
그 당시에는 억지로 아빠 먹이려는것이
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...
월급 받으면 그 주에 바로 경동시장
(서울에는 이런데가 있다 -_-
개 수십마리가 통째로 구워져서, '앞으로나란히!' 자세로
눈 허옇게 뜨고 혀내밀고 배 갈라진채로 거멓게 그을려
일렬로 누워있는걸 봤느냔 말이다 ToT
난 봤다....안중호 당시나이 9세 -_-;;;;;;;;;;;)
으로 달려가서, ^-_-^한 표정을 지으며
길거리에서 좌판 펴고 있는 할머니한테
희한한걸 사서, 열심히 아빠에게 먹이던
당시 30대 후반의 혈기왕성하던*-_-* 엄마의 입장을
이 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니
이해가 간다 m(_ _)m
..그러던것이 어느덧 세월은 마구흘러
(귀찮으니 대강 이렇게 처리한다 -_-;)
"엄마 고기! *-_-*" 라고 하면
당장 엄마 입에서
할아버지는고혈압이셨고할머니는당뇨병이셨고너도
고혈압당뇨병확률이높은편인데고기같은거먹지말고
야채나과일을많이먹어야한단다-_-++++++
란 말이 순서도틀리지않고 나오게 되었으니 -_-
어릴적 고기를 먹는다! 라는건 부의 상징이었을진대
20년이 지난 지금은
현미-_-, 조청-_-;;, 잣-_-;;;;;, 깨-_-;;;;;;;
무농-_-약유기재-_-배 채소 -_-;;;;;;를 먹는 것이
부의 상징으로 바뀐 것을
전문용어로 일취월장이라 한다 -_-+
하긴, 엄마의 어린시절..그때는 닭 잡으면
고기는 할아버지, 계란은 아들,
할머니랑 울 엄마 자매들은 닭이 잠깐 쉬다 나간 국물만
찔끔 맛보던 시절이었지.
엄마가 어릴적에 소고기를 딱 한번 먹어봤다고 했다.
만삭이 된 암소가...똥칸-_-에서 힘을 주다가
응아 와 함께 송아지까지 같이 싸버린-_-것이었다 -_-;;;
그 다음날 울 엄마 집에서는 익사-_-해 죽은 송아지로
큰 잔치를 벌였고
엄마는 그 맛을 아직 잊을수 없다며 한숨을 쉬고는
입맛이 없다며...
추석 선물로 들어온
한우 암소 갈비 접시에서 젓가락을 떼셨다 (-_-;;)
(배경음악: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하셨어~
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하셨어~
sung by "G.O.D" -_-;;;)
어린이 새농민에는 우리모두 시골로 가서
농사를 지어주자!(-_-) 라는 테마의
글쓰기 독자공모란이 있었고...수기 란이 있었고...
..그 수기란에 어떤 중학2학년짜리 열혈소년이
신장병으로 입원중인 아빠한테,
자기 한쪽 콩팥을 떼어 이식해준것을
수많-_-은 표창장과 함께 미화한 글을 읽고
...나도 아빠에게 도움이 되고자
이 어린 소년은 아빠가 신장병에 걸리기를 빌기도 했으니
후훗 십새끼 -_-;;;;
그중에서도 백미였던
...이름은 기억 안나는군 -_-;; 하여간 -_-+
어린이만화 전문이던 모 화백의
'오성과 한음' 이란 만화가 인기였다.
(혹시 아빠가 농협 다녔던 분 있으면
그 만화가 이름 메일로 좀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-_-/)
...적어도 나랑 동생은, 그거 서로 먼저볼려고
이를 갈며 주먹질을 하곤 했고 ;;;;;;;
화난 아빠의 손에 의해
"니들이 이걸 가지고 싸운다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해!!"
라는 외침과 함께
찢겨-_-져 나간 '어린이 새농민' 또한 그 몇권이던가. 흑...T_T
이전에 아빠가, '지우개달린 연필' 이 새로 나와서 신기하다면서
(...이렇게 말하니깐 내가 디게 늙은것같다. 아흑 -_-;;;)
한 자루를 사들고 왔는데
그 또한 나랑 동생이 서로 가지겠다면서 싸우다가
분노 한 아빠가 그걸 단번에 부러뜨리셨던것을 비롯하여...
싸우다가 좆 된 적이 그 몇번이던가...ToT
거기에선 농삿일-_-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매달 실렸는데
어린 나이에 그게 참 궁금해서 보곤 했었다.
대강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(남자애 이름은 민수, 여자애 이름은
수희였다 -_-;; 그리고 난....수희를 좋아했다 -_-;;;;)
들이 등장하여
농사의 달인-_- 에게 궁금증을 묻고
농사의 달인-_-은 너털웃음을 지으며
어린아이의 모자란-_-점을 알기쉽고 다정하게 서술해주는 -_-;;;
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짜증나는 구도의 동화였다.
뭐 기억나는 분들 있을지는 모르겠는데
어릴때 논리력-_-을 길러야 한다고
우리의 어머니들에게 개 뻥을 치고
그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돈 받아처먹을려고 쓴
서울대 웬 교수의 추천장을
신문 광고에 싣고 밀리언 셀러를 올린 바 있는
'노마네 반 아이들' (-_-;;) 이,
대강 그 문체였던걸로 기억난다.
그 정보중에 지금 기억나는것이 세가지가 있다.
코가 비뚤어지는 병에 걸린 돼지 치료법이다.
집에서 돼지를 키우는 분 있으면 이 메모하기 바란다. -_-+
1. 칼을 간다
2. 돼지 대가리를 도마 위에 어른 세명의 힘으로 내리 누른-_-다
3. 비뚤어진 부분을 식칼로 잘라-_-낸다.
알겠는가 -_-/
또 하나는, '바람든' 무우의 식별법. 뭐 이건 기억이 잘 안난다.
바람이 들었다 함은, 겉으론 멀쩡한데 단면을 내어 보면
속에 구멍이 숭숭 뚫린것을 의미한다.
그리고 마지막, 내가 이 오밤중에 실험하다 말고 (-_-;;;;;;)
컴 앞에 앉게 할 계기가 된 기억은
떫은 감을 달게 만드는 방법 이었다.
우리 외가가 경북에서 농사를 지었던 관계로 자주 놀러갔고
거기에서 감 나무를 발견해서 돌팔매질로 몇개를 따서
씹는순간 -_- 한 표정을 지었던것이 아직도 기억난다.
어린 나이에 아까워서, 반쯤 씹은 떫은감을 하루종일 들고다니며
한시간-_-에 한입-_-씩 먹고,
또 한시간동안 -_- 한 표정을 짓고..하던
나의 여덟살때 모습이라니. 훗 -_-;
(어릴적부터 확실히 궁상맞게 살긴 했다 -_-)
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.
감이 나무에 달린 상태 그대로, 거기에 비닐 봉지를 씌운다.
그리고 거기에 주사기로 알콜을 20ml 부어넣는다.
그리고 보름정도 가만히 놔둔 후 따먹으면
(표현이 음란하지만 이해바란다 -_-;)
감의 떫은맛이 사라진다고
20년전의 '어린이 새농민' 에서는
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-_-;;;;;;;
다음에 외가에 갈때 써먹으려고
그 페이지를 잘라내어 보관했건만
몇달이 지나, (어린아이 용어로는 몇밤을 자고 나서 -_-;;
ex: "-_-야, 앞으로 아홉밤만 더 자면 추석이란다 ^^*" )
^^^^^^^^^^^
외가에 갔을 무렵에는
이미 떫은감을 달게 만드는 마법(의외로 섹시한 단어다*-_-*)
따위는
어린 소년의 마음에서 지워지고 없었다.
어린 시절.
삼양라면등의 라면만 있다가
현재 짜파게티 류의 전신이 된
'짜장라면' 이 처음 등장했던 국민학교 시절.
오백원짜리 종이돈을 꼬깃꼬깃 들고
'조립식' 을 사러 뛰어가다가
어느 순간 오백원짜리 종이돈이
동전 으로 바뀌었음에 놀라던 시절.
(나보다 세살 어린 아가씨한테...
옛날에 500원짜리가 종이돈이었다고 했더니
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지어줌에...
난 나의 늙음-_-을 절실히 느꼈다 -_-;;;;;;
저랑 동갑^-_-^인 dyam님. 500짜리 지폐 기억나죠? ToT)
집에 돈이 없어서...나랑 동생이 자고 있는데
엄마 아빠가 우유값 걱정을 하자...
자다가 벌떡-_-일어나
"엄마 아빠 걱정마. 내가 나중에 커서 장가가면
우리 색시 젖 짜서 매일아침 공짜로 마실수 있어 ^o^"
...라고 말하던, 나이에 맞지않게 어른스러웠던-_-;;;시절.
(이 아이디어를 훔쳐들은 한 십새끼가
그 15년 후에 '젖소부인' 시리즈를 만들었다고 전해진-_-;;;;다.)
'너구리' '방구차'등의 오락이
구멍가게 앞에서 20원에 하던 시절.
그리고 그 돈 아낀다고 테니스줄로 쑤시-_-다가
(늙은 새끼들은 다 안다. 모른다면
94 이전 학번에게 문의-_-하시라.)
구멍가게 앞에서 손들고 무릎꿇고 하루종일 벌선후
울며 집으로 돌아오면서...
'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, 세상에서 가장 힘센
스무살의 남자가 되어 저 아저씨 앞에 우뚝 설거야 -_-+
그럼 저 아저씨는 "그때 정말 죄송했습니다...
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스무살의 남자님...ToT" 이라며
내 앞에 엎드려 빌겠지...후훗 ^o^'
라는 잡생각-_-을 하던 시절 -_-;;;;;;;;;;
"우리 중호는 커서 어떤 색시한테 장가갈까? ^^*" 라고
엄마가 묻자
"엄마한테 장가갈래 ^^*"
엄마 & 아빠 : "....-_-;;;"
라고 말했던
오이디푸스 컴플렉스적 시절 -_-;;;
(무..물론 지금은 트럭으로 줘두 안가져 ToT)
80년대 중반에 우리 아빠는 한미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.
그와 동시에, 매달 우리 형제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던
'어린이 새농민' 의 배급-_-은 뚝 끊겼고
우리 형제는 바둥거리며
"아이씨 아빠 은행 그만두구 다시 어린이새농민 가져와 ToT"
라고 지랄-_-하다가
옷 벗기고 쫓겨난 바 있다 -_-;
아버지 월급이 수십만원이나 올라
집에 여유가 생긴것 따위는
국민학생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.
한미은행 에서는
"어린이 새은행원'(-_-;;;;)따위는 나눠주지 않았었고
그 나이에는
그것이 전부 였었다.
...그때 그 소년은 나이를 먹었고
과학과 국가와 미래....아 ..아-_-;; 미안하다 -_-;;;
술과 담배, 그리고 여자(-_-;;;;;)를 알게 되었고
지금 실험실에서 졸업논문 쓰다가
잠깐(그..그래...잠깐 ...ToT;;;;;) 컴 앞에 앉았다 일어선다.
Like it or not, I am the Game.